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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색소폰 부는 화가… 대륙의 ‘장가계’ 접수 한 안진수
    첼로의 인터뷰 2019. 4. 23. 17:52

    매월 국내외 전시를 하는 안진수 작가가 인사동 작업실에서 잠시 나와  여의도 길을 산책했다.

    화가라는 걸 모르고 기다렸다면 몸 좋은 곱슬거리는 회색 머리를 한 운동하는 중년이 걸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참이다. 매월 전시하며 몇년치 일정이 차 있는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초대 개인전 중인 안진수 작가와 만났다.

     

    대학 졸업 후 30대부터 시작한 그림 작업은 이제 30년이 되어가고, 매월 국내외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쉬지 않고 해오고 있는 안 작가에게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가 몇 회째 인지는 묻는 건 무의미하다. 군대 시절을 제외하면 한 번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니 말이다. 최근 인천 ‘본사랑 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 오픈식을 가진 안진수 작가는 갯벌과 바다가 바로 보이는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에 있는 운치 있는 카페 갤러리에서 9월 말까지 2개월간 전시한다.

     

    안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중국 청화 예술대학 미술대학원에서 3년간 공부하면서 ‘장가계’와 인연을 맺었다. 장가계는 중국 지도에서 보면 가운데 아래쪽으로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에서 350km 거리며 버스로는 5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영화 아바타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며, 거대하게 높이 솟은 봉우리들이 3천 개나 된다고 한다.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을 한 후에도 자주 장가계를 찾아갔으며 그만이 가지고 있는 장가계의 절묘한 표현법을 완성시키고 중국에서 전시를 시작했다.  단체전과 개인전의 모습으로 계속 이어진다. 중국 작가보다 안진수가 표현한 ‘장가계’의 풍경이 더 매력적일까? 안진수 작가의 그림이 왜  중국에서 인기를 끌까?

     

     

    한국현대미술가회 그리고 전시

    한국현대미술가회를 조직해 5년째 이끌고 있는 안진수 작가는 100여 명의 회원과 함께 중국과 미국 등 해외 교류전에 참여한다. 전시 장르는 서양화부터 동양화까지 다양하다. “보통 중국에서 단체전을 할 때 한국 작가 100여 명과 중국 작가 100여 명이 동시에 전시를 한다.”며 중국이 통 큰 대륙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전시를 하는 지역은 보통 칭타오나 대련 등 중소 도시라고. 그곳은 전시를 같이 하는 작가들과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하고 중국 미술을 경험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이 밖에 매년 국제아트쇼를 주최하는 안진수 작가는 오는 11월 29일 중국 위해서에서 일주일간 전시를 할 예정이다. 전시 일정이 연결되는 요즘은 계속 밤샘 작업을 하고 있다. 보통은 전시를 많이 하는 것도 이유지만 밤에 작업이 잘 되어 아침 5시가 되어야 손에서 붓을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점심을 먹기 전까지 수면하는 올빼미형 예술가다.

     

     

    중국이 안진수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200여 명이 함께 하는 단체전 모습이나 중국의 미술 전시장 반응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안 작가는 “중국에서 전시하면 인기가 좋다.”며 한국 작가의 자부심을 드러내 보인다. 한 중국 관객이 “그림이 강렬하고 힘이 있다”며 안 작가의 작품을 평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보통 모란, 장미 등 붉은 계통의 꽃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부의 상징’. 그들은 꽃이 돈을 불러온다고 믿으며 ‘돈복’ 작품(=꽃 작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안 작가도 중국 전시에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예술을 선보이지 않을 수 없다고. 안 작가 특유의 강렬한 유화 표현법으로 중국인들에게 낯설면서도 강한 매력으로 압도하는 꽃 작품을 선보이고 중국인들은 그의 작품에 *빨간 딱지를 붙인다. (*구매 의사를 표시하는 것)

     

    한국•중국 활동을 주로 하는 이유는 이렇다. 중국은 미술 시장이 크다. 프랑스가 예술의 나라라는 건 이제 옛날 얘기가 됐고, 현대미술을 선도하는 영국과 미국, 아트 페어를 열면 세계 미술 관계자들이 가장 몰린다는 홍콩만큼 중국의 미술시장은 활발하며 큰 움직임을 보인다. 안 작가는 “중국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면 전시되고 있는 전체 그림을 모두 사는 경우가 많다. 뉴욕이나 유럽은 그렇지 않다. 100-200만 원 선 작품이 주로 팔린다."고 전시 현장 경험을 전했다.

     

    매월 해외에서 전시를 하는 안진수 작가에게 미술 시장의 움직임과 그의 관심도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앞으로는 한국 옥션과 외국 미술 시장에 더 관심을 둘 생각이다. 개인이 혼자 활동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해 주는 갤러리를 통해서 전시를 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답변이다. 보통 인지도가 부족한 예술가들은 그림을 봐주는 관객과 컬렉터들이 너무 몰라 힘든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토로하면서 주요 갤러리들이 작가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는 비단, 안 작가의 생각만이 아닌 동시대 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느끼는 바 일것이다.

     

     

    안진수 작가가 말하는 중국 미술, 그리고 그의 표현법

    안진수 작가에게 중국 미술은 ‘중국화’, 우리나라 미술은 ‘한국화’다. 그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유화’(*기름으로 갠 물감을 사용하는 회화의 한 분야.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를 그린다. 어릴 때 유화 풍경화와 정물화를 사실적 묘사로 가지런히 그리시던 잘생긴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이 생각난다. 안진수 작가는 풍경을 주로 그리지만, 그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처럼 사진을 찍은 듯 착각이 오는 작업이 아닌, 힘 있는 붓 터치가 살아서 ‘장가계’의 절경에 완성도를 더한다. 그래서 그 거대한 중국의 절경을 표현하는 데 그들의 마음을 훔친 게 아닐까. 안 작가는 “현대 미술에서 중국 작가는 인물화 표현이 무척 뛰어나다.”고 평한다. 묘사력, 그리니까 정밀화의 극치인 리얼리티즘이 단연 뛰어나다고. “유화는 수정이 가능하지만, 중국화는 수정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뛰어난 표현력이 놀랍다”고 탄식한다.

     

    유화 작업에 노하우가 있는지 혹은 미술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팁을 달라고 했다. “장마철엔 습도가 높아(특히 한국의 7월) 유화가 마르지 않아 고생한다. 헤어드라이기며 선풍기를 최대한 가동한다. 유화 물감은 이상하게 건조한 겨울에 잘 마른지 않는다. 보통 캔버스에 1차로 그린 후 일주일 간 기다리고 그 위에 덧칠하는 작업을 반복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 첫 단계는 밑그림을 실제와 비슷하게 그리고, 2차로 나이프 작업을 한다. 3차는 힘 있는 붓 터치로 마감한다. 작품의 크기는 100호(162 x 최대 130cm), 50호(116 x 최대 91cm) 등 다양하다고. 일반 성인 여자의 평균 키 정도 작품 크기와 안 작가만의 거칠고 깊은 무게감을 갖는 유화 물감의 터치는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다. 안 작가는 “간혹 나이프 작업을 하는 경우 사실성이 부족한 경우가 있는데, 내 작업은 나이프로 표현할 수 있는 거친 질감을 가지고 가면서 풍경을 자세히 느낄 수 있는 묘사로 이어진다.”고 특징을 설명한다.

     

     

    안진수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 ‘장가계’

    ’장가계’의 풍경은 안진수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에 등장한다. 그는 시리즈의 새로운 작업에 임하기 전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느끼기 위해 2개월 정도 장가계에서 지낸다. 아침 식사만 간단히 하고 나면 나머지 하루는 종일 그곳을 느낀데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몇 배 큰 장관이며, 최근엔 케이블카가 생겼다.”며 관광지 코스로 좋을 그곳의 새로운 정보도 제공한다.

     

     

    색소폰 부는 올빼미 화가 안진수

    올빼미과들은 왠지 운동을 안 할 것 같다. 안 작가는 “난 운동 좋아한다. 매 주말 축구도 하고 골프를 친다.”며 술•담배는 하지 않는다고 이어서 말한다. 밤샘 작업을 하는 에너지 원동력이 여기에 있었다. 운동을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예술인을 처음 봐선지 잠시 놀랐다가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하며 매월 국내외 전시를 기획하거나 초대를 받으면 달려가는 그의 에너지 근원을 발견했다. 인사동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쉬는 시간엔 학창 시절 밴드부에서 배운 색소폰을 꾸준히 분다고 한다. 맙소사. 작업실에서 일주일에 한번 수강생을 가르친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유튜브에 자신의 연주 동영상도 올린다며 보여주는데 시청 뷰가 무척 높은 것에 또 한번 놀랐다. 그래서인지 또래 동료 작가들과는 자주 못 어울린다며, 모임에 참석은 하지만 술 담배는 노우. “술이 몸에 안 받는다. 아니었음 정말 많이 마셨을 거다.(하하)”

     

     

    안진수 작가는 “화가가 제일 좋다.”며 작업 후에 오는 만족감으로 붓을 놓지 못할 거 같다고 말한다. “예술가는 정년 퇴임이 없지 않나. 내 손에 힘이 없어질 때까지. 그림을 그릴 거다.”고 말한다. 그의 또 다른 꿈은 “한국미협에서 앙상블 팀을 구성해 전시 오픈 시마다 색소폰 연주를 하고 싶다. 물론 돈은 받지 않을 거다. 내 인생의 중심은 그림이니까.” 백세시대다. 많은 매체나 사람들은 인간이 100세를 넘나들게 되면 직업이 최소 3번은 바뀐다고들 한다. 한진수 작가에게 ‘작가는 평생 작가다.’ 

     

    장가계의 봄. 10호. oil on canvas
    설악산의 겨울 장가계의 봄. 30호. oil on canvas

    [본 기자의 미술 비평 한마디] 한국미술시장과 해외 사례

     

    88년 서미갤러리 오픈, 미국화상들이 IMF로 한국에 미국 달러가 없는 걸 알고 들어와 움직였다. 100만 달러 값어치의 작품을 70만 달러에 살 수 있었다. 갤러리스트들은 작가의 작품을 컬렉팅 하여 아카이빙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우리나는 작품을 구입하고 두 배 정도의 가격에 되판는 데 주력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가 없다는 말이다. 가격을 높여놓은 큰 갤러리들이 많아져 국제 경제력이 부족하며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현대 미술관 모마(MoMA)가 젊은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받아주고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미술시장 1세대에서 단단하게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힘 있는 큰 갤러리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독일과 영국의 yba(UK) 작가들이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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