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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니멀리스트 vs. 삽질러
    직업 김첼로 2019. 5. 16. 06:06

    사 먹는 밥이 질리거나 싫어서 요리를 해 먹는 것처럼 나는 가죽으로 된 소품, 가방, 구두를 너무 좋아해 원하는 모양을 종이에 옮겨 그리고 가죽을 한두 평씩 사다가 망치질과 바느질을 해서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양가죽 파우치는 언제든지 만들 수 있게 작은 작업대와 나무 공구함은 항상 제자리에 둔다. ㅡ미니멀리즘을 실천하지만 내 드릴 세트와 가죽용 공구 박스는 ‘절대로’ 버릴 수 없다.ㅡ 자칫 옆 사람과 수다를 떨기라도 하면 아까운 가죽이 비뚤게 잘리기 십상이고, 그 방심한 순간의 바느질은 나중에도 못나게 튈 만큼 상당한 정성이 들고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며 시간이 ‘이런 공정을 거쳐 만드느니 내가 산 가죽 값보다 30배 더 주고 사는 게 훨씬 나은 일일까’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오래 걸린다. 명상이나 힐링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비싼 명상 학원을 다녀와도 가죽 가방 따위는 생기지 않을 테니 나에게는 남는 장사다. 

     

    대학 땐 당구대만 한 길이의 파이프에다 용광로에서 갓 나온 듯한 녹은 유리를 묻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어야 하는 블로잉 기법으로 컵을 만들고, 퓨징이나 프레스 기법으로 가마에 접시를 수십 수백 장을 구웠다. 이 손맛이 들어간 ‘작품’은 나에게 있어 공장에서 찍어 낸 그릇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어느 날 지금 사는 내 부엌을 보니 다이소나 자주(JAJU) 그릇과 접시가 최소 필요한 만큼 널려있다. 그나마 내 오븐에 자주 들어가는 법랑 그릇과 용기는 괜찮은 편이지만. 작년부터 가게 된 후배의 도예공방에서 받은 눈부시게 파-란 코발트블루 대형 청자 접시를 가지고 온 날의 내 표정은 ‘내가 어쩌다 이렇게 못생긴 그릇들과 살고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젠 공방에 놀러만 갈 게 아니라, '시간이 금이다’가 머리를 지배하는 나답게 물레 차기에 올인해 나만의 종지들과 접시와 그릇을 만들겠다. 덩치가 조금 큰 접시들이나 대접은 설거지할 때 손목에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무거운 게 단점이지만. 나에게 오랫동안 가죽 만들기를 전수해준 홍대 터줏대감이자 #간지개작살(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없을 것 같은 간지와 더 한 간지로 튜닝을 한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와, 아마 마포구를 통틀어 가장 큰 개를 아들로 소유한 사람)인 분은 “멋있는 건 다 불편하지”라고 말했다.

     

    빵 순이. 빵을 밥보다 좋아해 붙은 80년대 흔한 별명이 나에게도 스쳐 갔다. 개인이 하는 수제 뭐 그런 게 아닌 학교 안에 있었던 파리바게뜨 사장님께 전화로 내가 먹고 싶은 빵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질 안 나, 그날그날 원하는 빵 나오는 시간 확인 후 수시로 빵집을 오갔더랬다. 빵 흡입이 너무 잦은 난 ‘아기 분유값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었달까. 죄책감이 들었고 베이킹을 시작했다. 프랑스에 살면서 맛보았던 치즈를 못 잊어 우유와 레몬을 끓여 한때 열심히 치즈를 만들어 먹었다. 원하는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이건 리코타, 저건 코티지 등으로 알아서 나와주니 신선한 치즈를 먹는 기쁨만으로 만족이다. 뭐 우유 2,000미리에 손바닥만 한 치즈 덩어리 하나가 남겨지는 걸 보면 들어간 시간과 쌓여있는 설거지 양까지 상당히 허무하긴 하지만... 퀄리티를 중요시한다면 제격이고, 정성에 비해 치즈 양에 아쉬움을 표할 거 같으면 시작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가구를 파는 곳이 잘 없다. 가끔 외국 웹사이트에서 눈에 띄게 매력적인 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공간 활용을 하는 것을 팔더라. 배송도 일이 커지는 일이지만, 외국의 것이나 국내에서 괜찮은 디자인을 발견한다는 건 내가 원하는 가격에서 ‘0’이 두 개에서 세 개는 더 붙어있다. OMG. 그래서 가구 만들기에 도전 하려 했으나, 시간+공간+돈 모두 내 편이 아니었기에 디자인을 해서 동네 가구 공방에 맡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산다. 가끔 집안에 페인트를 칠하는데, 벽이든 가구든 원하는 부분만이라도 새것 같아 좋다. 율리가 레고 조립을 할 때 나는 페인트 붓으로 집을 덮는 게 이것도 마음이 힘들 땐 힐링이 되는 걸 느꼈다. 더러운 부분과 경계가 선명하게 생기면? 그 벽면을 모조리 다 칠해야 한다는 게 함정이지만, 다 칠해도 기분 좋고, 나는 자주 ‘그라데이션’ 기법으로 마무리하는데 그러면 다음 페인트를 칠할 때까지 ‘티’가 나지 않는다. #ㅋㅋ

     

    읽고 싶은 글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어디까지나 내 기준) 자기 너무 주장이 강하거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자기만의 생각을 말하는 건 좋은데 독자를 설득 하려 드는 그런 글. 읽는 사람이 뭔가를 느끼거나 깨달아서 자연스럽게 설득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 글 말이다. 중학교 국어 시간,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개인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간 수필을 읽을 때 멀미가 나려고 한 적이 종종 있었다. 그때부터 절.대.로. ‘수필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으리’라는 무언의 다짐을 했고 나의 읽기 편식은 줄곧 ‘소설’에만 집착을 했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까지 받은 소설가 토니 모리슨이 말한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는 말이 일침을 가한다... 

     

    발레리나를 꿈꾸며 아버지의 극한 반대에도 엄마의 도움으로 몰래 학원을 다니며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꿈을 키웠던 10대의 나는 수능 전 발레복이 빨래대에 널려있는 걸 발견한 아빠에게 그날 끝장났다. 현대 무용을 전공한 엄마의 꿈을 ‘결혼’이란 이름으로 중단시켰던 것처럼, 활동 수명이 짧고 ‘딴따라’로 빠질 확률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나의 꿈도 꺾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내 작업실에서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만드는 ‘멋있는’ 인생을 살라는 아버지의 바람으로 나는 미술학원으로 돌아갔다.

     

    가톨릭 교회에 들어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고, 유학을 가기 바로 전날까지 작업한 유리 상보(밥상을 덮는) 작품과 #미니멀 분위기로 붙인 유리 타일(수 천장은 잘랐던 기억이다)은 지난달 일정 때문에 지나갔던 7호선 청담역 지하철 역사 안에 지금도 있다. 파리에서 의상 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모자 모델을 해주던 날 그 집에서 실제 마네킹 두세 개에 당시 유행의 절정을 이뤘던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옷이 수백 개의 핀과 어우러진 모습은 순간 나의 눈을 얼게 하고 삽질 DNA는 스멀스멀 ‘나도 패션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몇 초간 했었던 걸 보면 이번 생의 삽질 여정은 투비컨티뉴 인가... #제2의_순돌이_아빠가_되야하나 #그리스신화나_꼭_다_읽자 #미니멀리스트vs삽질러 #계속_눈_보니_생각도_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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