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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가득 넣어서 <엄마 아빠... 고마워 잘할게요>직업 김첼로 2019. 5. 16. 12:40
종일 영혼 없이 기사를 썼다. 정보를 취재하고 문맥에 맞는 기사를 써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건 좋은데 가끔 나만의 글이 아니라는 게 뭔가 따뜻한 온도가 남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 현진씨가 이른 아침부터 우리 집까지 먼 길을 오셨다. 무겁게 들고 오신 가방에서 음식이 한참 나온다. 나이 70에 매일 일하며 집안 살림에 아빠까지 챙겨야 하는 엄마. 가슴뼈가 등 쪽으로 눌리는 느낌이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엄마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통화 버튼을 눌러서 어제 생신이셨던 욱택씨를 바꿔준다. 병원 마취약에 취해있던 어제 나는 아빠의 음력 생신을 하얗게 잊었다. 불효년. 죄송한 마음에 <아빠아-> 했지만, 욱택씨는 바로 <됐고, 몸 관리나 잘하거라. 너는 항상 걱정이다.>며 마음이 아프다는 목소리를 몇 마디 내셨다.
과학 실험을 집에서 한답시고 앞머리를 가스 불에 태워 먹고, 집에 있는 멀쩡한 라디오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을 완벽히 못 해서 못 쓰게 만들고, 문제아 친구들을 만나던 중학생 시절엔 3년간 학교에 출석한 모든 날을 당시 대기업을 상대로 회사에서 잘 나가던 아빠가 출퇴근을 나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하며 운전기사 및 보디가드 역할을 하셨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다가도 교문 앞에 아빠 차가 있는 걸 보고 친구들이 알아서 나에게서 떨어졌다. 안 그러면 날카롭고 공군기지에서 들릴 법한 큰 데시벨로 아빠의 이유 없는 <불호령>이 귀에 꽂혔으니까. <떨어져 이놈들!> 정말 창피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 싫었던 아빠의 <과잉보호>가 아니었으면, 아마 그 당시 <노는 애들> 사이 유행이던 <집 나가기> <시비걸기> <쌈박질> 등을 하면서 오지게 사고를 치고 다니다 <어떻게> 됐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욱택씨 고마워. 나와 형제들에게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낸 적 없는 현진씨가 감사하다. 내가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난 그 90년대에 과목별로 과외를 받고 학원도 다녔다. 서울대 다니는 이웃집 언니에게 개인 그림 과외를 받으며 ㅡ이미 진로가 정해져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는ㅡ 복에 겨워하면서 반항을 밥 먹듯이 하는 재수 없는 10대였다.
친구 따라 충분히 비뚤어질 수 있던 나를 버리지 않은 부모님이 감사하다. 그들은 여전히 다 어른이 된 나를 또 다른 이유로 걱정 한다. 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건 어느 대에나 있는 일이다. 아이를 낳고 대학원을 다니며 노랑머리를 해가지고도 얼마든지 밝은 생각을 하고 기분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희망을 안겨드릴 수 있었다. 영혼을 가득 넣어서 <잘할게요.>, <잘하자> 쓴다. 원하고 생각하고 말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브라카다브라 2018.2.27.화.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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