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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사] 과학자의 꿈은 항상 옳은가
    첼로의 책장 2019. 5. 11. 06:06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하나밖에 없나? 고등학교 시절 풀던 수학 문제는 선생님이 흰 분필로 풀든, 빨간 분필로 풀든 답은 하나였다. 문제를 푸는 과정을 달리 할 수는 있지만 답은 하나인 문제를 빨리 풀도록 주로 훈련을 받았다. 수학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4개의 보기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문제 300여 개를 풀고 대학에 들어간 세대라서 그런지 답이 하나여야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젠, 세상에 답이 하나인 문제는 오히려 특수한 경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답이 두세 개뿐인 경우도 흔치 않다. 백지 위의 점 두 개 사이에 그릴 수 있는 선들의 숫자만큼이나 답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세상엔 수많은 답 중에서 왜 저런 답을 채택했을까 싶은 것들이 제법 많다.

     

    인류가 달에 간 것을 역사상 가장 큰 과학적 성취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달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고개를 약간 갸웃하게 된다. 달에 가서 인간이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달의 지진과 태양의 열풍을 측정하는 기계를 달에 설치했고 385kg의 월석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달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었지만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간 것에 비해서 과학적 성취는 초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이 냉전 시대에 소련과 국가적 자부심을 놓고 경쟁했다는 것 이외에 실질적인 이익을 따지기는 빈약하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이익이 별로 없는 일들을 하는 이유를 웅변적으로 설명한 사람이 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그는 <최종 이론의 꿈>이라는 아름다운 책에서 꿈에 대해서 연설을 한다. 와인버그가 만들고자 한 가속기는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둘레 87kg. 건설비용은 1983년 계획이 시작될 때 추산으로 8조 원. 최종적으로 미국 의회는 1993년에 이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고 건설이 중단된 곳은 2006년에야 민간에 매각되었다. 이때 건설하려고 했던 충돌기는 목표가 양성자 질량의 4만 배에 달하는 양성자 빔을 쏘아서 그 힘으로 입자를 쪼갤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까지 부수는 것이었다.

     

    그 밖에 어떤 목적도 없는 이 기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와인버그는 꿈을 쫓아왔던 인류의 역사를 들어 설명한다. 당장의 생존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자연의 근본 법칙을 찾아왔던 인간이 궁극의 입자를 만나고, 그 궁극의 입자를 이해하면 그 위에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차근차근 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7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필립 앤더슨은 설령 궁극의 입자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나올 수 없다고 와인버그를 반박해서 이 충돌기 건설 중지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앤더슨의 생각은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궁극의 입자를 이해해도 그것들이 모여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겠다는 꿈에 쏟을 엄청난 예산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여전히 실용적인 효과를 넘어선 과학자들의 그리고 기술자들의 꿈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꾸는 꿈이 단순히 그들의 꿈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꿈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 꿈을 위해서 여전히 굶주리거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외면하고 투자를 해도 좋은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기반한 자율주행 자동차 같은 기계들에 어마어마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앨런 머스크 같은 이들은 화성에 인류의 식민지를 만들자는 꿈을 이야기한다. 엔지니어들은 이런 꿈들이 피를 끓게 만들지만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여기에 투자를 집중해야 할지는 다시 따져 볼 일이다.

     

    우리가 해 보아야 할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어렵다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생기면 지금보다 무엇이 좋을까? 음주운전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런 일들을 사람이 하지 않고 인공지능과 기계가 맡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물을 만들어 보겠다는 엔지니어의 꿈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혹은 그곳에 투자하는 돈이 긴급하게 필요한 다른 요구들을 미루거나 거절할 정도로 절박한 일일까?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고작 그런 것뿐이라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하나밖에 없는 답인가? -주일우 (이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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